근친도 유전인가 - 단편

근친도 유전인가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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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도 유전인가?근친도 유전인가? 


좋았습니다. 


남편의 그것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남편이 자신의 좆으로 제 보지를 즐겁게 못 해 주고 그저 형식적인 섹스만 하면서 밖으로 돌며 다른 여자들과 정을 통하는 반면 그 사람은 정말이지 자기 마누라에게도 그렇게 헌신적인 섹스를 해 준 적이 없다면서 저를 즐겁게 해 주었기에 저도 모르게 저는 저의 딸아이까지 그 사람에게 상납을 하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을 때는 이미 그이의 훌륭한 좆은 딸아이 보지 안에서 정열적인 펌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딸아이까지 상납을 할 정도로 저에게 모든 만족을 준 그 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남편의 여동생 남편인 우리 딸아이에게는 고모부요 저에게는 시누 남편이었습니다. 


그 분은 아주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전 처녀시절부터 직장생활을 하였는데 그건 신발의 가피를 만드는 재봉틀 기술자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부산의 신발 업체들이 인력난에 고임금이란 핑계로 중국으로 사업체를 이전을 하는 바람에 저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란 작자는 일을 한다고는 하면서도 월급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벌어 둔 돈까지 축을 내고 있었기에 저는 어떻게 하든 간에 돈을 벌여야 딸아이 학비며 생활비를 충당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봉틀 기순 밖에 없는 저를 딱히 반겨 일을 시키려고 하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의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시누가 시누 남편인 고모부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고 고모부는 저를 자기 공장에 근무토록 해 주었습니다. 


저는 있는 힘과 있는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고모부도 저 뿐만 아니라 저를 포함한 10여명의 종업원 전부에게 잘 해주었습니다. 


급료 날이 매월 5일인데 그전에 공휴일이 있다면 공휴일 전날 급료를 지급했습니다. 


심지어 1일이 일요일인 경우 말일 날 급료를 지불하였습니다. 


하루 급료는 그날 일하고 그날 받아가는 셈이었죠. 


그 정도로 고모부는 종업원을 말 그대로 가족처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종업원인들 어떻겠습니까. 


눈으로 안 봐도 영화의 스크린처럼 지나가지 않나요? 


저를 포함한 우리 종업원들은 사장님이 우리를 생각 하는 만큼 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 100PPM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PPM이란 정확하게 영어로 말하면 parts per million이란 말이고 그 뜻은 100만 분의 1 을 의미합니다. 


그럼 제가 말한 100PPM은 무슨 말인지 아세요. 


간단하게 말하면 백 만 개 중에 100개란 말인데 이는 불량률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면 적어도 보통 100개당 한 개 정도의 불량품이 포함이 되고 그 불량품은 수정이나 수선을 하여 합격품으로 만드는 것인데 100PPM이란 말은 백 만 개 중에 불량을 100개 밖에 허용을 안 한다는 말입니다. 


간단하게 생각을 해 보세요. 


만 개 중에 불량이 하나만 있어도 반품이라면 납품을 해 먹겠습니까? 




하지만 고모부가 납품을 하는 회사의 협력업체 중에 100PPM을 충족을 시키는 공장은 우리가 일하는 고모부의 공장뿐이었습니다. 


이는 사장인 고모부가 종업원을 일군이 아닌 가족으로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고 또 우리 역시 사장님은 사장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족처럼 지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고모부인 사장님이 우리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생각을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 고모부는 장손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보다 많은 제사를 모셨습니다. 


거의 매달 제사는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제사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자기 집으로 우리 종업원들을 초대하였고 그리고 제사 음식을 먹였습니다. 


그렇다고 회식을 안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을 하는 날은 보통 때와는 달리 5시에 마치고 사장님 집으로 불려가 접대를 받아야 하였습니다.(출근 9시에 퇴근이 정상적으로 오후 6시인데 한 시간 당겨 집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고모부 집에 갈 일이 있으면 고모부였지 공장에서는 당연하게 사장님이란 호칭을 썼습니다. 


전혀 다른 뜻을 품은 적도 없고요. 




4년을 근무하였었나. 


고모부위 어머님이 병환이 났고 얼마 못 가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바빴습니다. 


저 만이 아니라 우리 종업원들은 힘을 모아 사장님의 어머님 장례를 치르는데 도움을 주자고 결의를 하였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는 일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르 장례식장으로 가서 심부름도 하고 손님 접대도 하였고 밤 열두시가 가까워서야 집으로 갔습니다. 


발인 날. 


다른 종업원들도 발인을 보고 일을 하자고 하였으나 납품을 하는 화사에 급한 물건들이 생기는 바람에 친척인 저만이 종업원 대표로 발인을 봤습니다. 


그리고 영구차는 사장님 집 앞에서 거리제를 모셨습니다. 


사장님께서 비통하게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그만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영구차가 장지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부랴부랴 공장으로 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오후 4시가 될 무렵 사장님께서 충혈이 된 눈으로 모습을 보였고 종업원들에게 일일이 찾아가서 등을 두드려주거나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정아 엄마 절 따라오세요. 사무실로”저에게 오더니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습니다. 


사장님은 얼마나 알뜰하고 검소하게 공장을 운영하였든지 그 흔한 경리 하나 두지 않고 자신이 경리 업무를 보면서 또 현장의 기계가 고장이 나거나 공정을 바꿀 경우 공정 바꾸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사장님 고생 많으셨어요.”환하게 웃으며 사장님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저는 사장님 옆에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뭘요, 형님하고 처남댁께서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고모부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으나 눈에는 아직도 우수에 찬 모습이 역력하게 보였습니다. 


“할머니 보내시니 무척 섭섭하시죠?”저도 모르게 저는 고모부 손을 덥석 잡고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고모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저를 가볍게 보듬고는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순간 저게 제 자신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행동을 고모부에게 하고 말았습니다. 


“!”고모부도 무척 당황해 하였습니다. 


보듬고 등을 두드리던 고모부 면전에 저의 얼굴을 돌렸고 그리고 제 입술을 고모부 입술에 맞추고 말았습니다. 


고모부가 저의 입술을 거절하지 아니하자 저는 고모부 목을 두 팔로 감으며 혀를 고모부 입안으로 들이밀었습니다. 


머쓱해 하던 고모부도 저의 적극적인 행동에 한 순간 황당해 하면서도 제 혀가 입안으로 들어가자 달콤하게 빨았습니다. 


“고모부 이번 일요일 12시에 00극장 앞으로 나오실 수가 있어요?”남편의 여동생 남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입니다. 


“그......그러죠”고모부가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 잊었던 근친이 다시 제 몸에서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전 그전에 벌써 근친의 경험을 가졌었거든요. 


그때의 그 짜릿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 셈이었답니다. 


그건 중학교에 입학을 한 후였습니다. 


참 먼저 저는 아버지의 존재에 관하여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엄마나 외갓집 식구 그 누구도 저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였거든요. 


나중에 어렴풋이나마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짐작하기 전 까지는 말입니다. 


엄마와 저 그렇게 단 둘이 사는 집에 제일 자주 방문을 하는 사람은 엄마의 오빠인 외삼촌이었습니다. 


엄마와 제가 작은 도회지의 한적한 곳에 세 들어 사는 것에 비하면 우리 외삼촌은 우리가 사는 도회지에서는 그리 멀지 아니한 읍내에서 약국이 아닌 약방을 운영하며 살았습니다. 




참고로 약국이 약학대학을 나와 시험까지 치른 후에 운영하며 조제를 할 수가 있다면 약방은 약학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닌 예전에 약을 취급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약을 취급을 못 하게 하자 반발을 하며 대모로 이르자 소위 약종상이란 것을 만들어 시험을 치르고는 시험에 합격을 한 사람들에게 조제는 못 하지만 판매는 허용하는 자격을 주었고 요즘도 간혹 약방이란 간판을 단 곳이 도회지에서도 눈에 보이지만 시골에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외삼촌이 바로 그 약방이란 것을 운영하였죠. 




그런데도 외삼촌은 오시면 우리 단칸방에서 하룻밤을 항상 유하고 갔습니다. 


또 외삼촌이 자고 가는 날이면 항상 전 일찍 잠을 잤습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면제가 희석된 음료수를 마신 탓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어린 저는 외삼촌이 왜 우리 집에만 오면 잠을 자고 가고 또 외삼촌이 온 날이면 초저녁부터 졸음이 오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친가 친척들이 없는 저에게 외삼촌의 존재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요즘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 약방은 거의 약국 이상의 돈을 벌었습니다. 


법으로는 조제를 못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뒤로 조제하여 팔았기에 그 이문은 엄청 많이 남는다는 말을 외삼촌은 곳 잘 하였기 때문이었고 또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면 저의 입은 행복해지는 날이요 또 가시고 나서는 몸이 호강을 하였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시면서 절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이 먹을 것을 잔뜩 사 왔기에 입이 행복하였고 그리고 가시고 나면 엄마는 어디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옷을 사 주거나 아니면 하다 못 해 머리핀이라도 하나 사주니 몸이 호강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생기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거의 D컵에 가까운 C컵의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지만 저의 몸은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 몰라보게 발육이 좋아졌습니다. 


요즘이야 영양가 좋은 음식에 호르몬이 많이 함유가 된 화장품을 사용하기에 일찍부터(심지어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도 했다는 소문을 들음)초경을 하며 발육도 빨라지지만 제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당시의 작은 도회지 사람들의 음식이나 화장품은 변변치 못 하였기에 발육이 많이 늦어 심한 경우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야 초경을 치르는 애들도 있을 정도였는데 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초경을 시작하였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젖가슴까지 부풀기 시작하였습니다. 




“미희야 엄마는?”그날 역시 셋째 일요일 전 토요일이었습니다. 


외삼촌의 약방은 매주 첫째 일요일과 셋째 일요일을 쉬는데 그 전날인 토요일 오후 6시 경이면 항상 우리 집 방문을 노크하였습니다. 


엄마가 공장에서 마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하고 맞게 말입니다. 


“외삼촌 엄마 말이야 엄마 친구가 갑자기 입원을 하는 바람에 일 마치면 거기 갔다 온다 했어.”하고 말하면서도 저는 엎드려서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언제 온단 말은 없고?”외삼촌이 제 머리맡에 앉으며 물었습니다. 


“응 조금 늦을 거래면서 외삼촌 오시면 술이나 마시며 기다리라고 했어”고개를 들고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응 그래?”대답을 하는 외삼촌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제가 외삼촌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들자 외삼촌의 눈에 노 브라의 제 가슴을 봤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빨리진 발육에 가장 힘든 것이 브라를 하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한여름이면 얼마나 거추장스럽든지.............. 


그래서 가능하면 집에 오기만하면 노브라 차림으로 있었는데 그만 그 노브라 안의 젖가슴을 외삼촌이 보고 만 것입니다. 


“미희야 잠시 앉아 봐라”외삼촌에 제 겨드랑이 안으로 손을 넣고 일으키며 말하였습니다. 


“왜?”영문을 몰랐기에 엉거주춤 일어나며 물었습니다. 


“너 브래지어 없니?”외삼촌에 티 위로 저의 젖가슴에 손을 가볍게 얹더니 물었습니다. 


“있어, 하지만 집에 오면 거추장스러워서 안 해”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래? 외삼촌이 우리 미희 브래지어 좋은 것으로 사 줄까?”외삼촌은 젖가슴에 얹은 손을 때지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주무르지도 못 한 체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었습니다. 


“저....정말!”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암 가볍고 신축성 좋은 놈으로 말이지”외삼촌의 손이 저의 젖가슴을 가볍게 잡았습니다. 


“정말이야 외삼촌 정말이지?”전 젖가슴을 주무른다는 것을 무시하고 물었습니다. 


당시 제가 착용하던 브래지어는 시장 난전에서 파는 싸구려 브래지어였고 그나마도 겨우 두 개로 하나를 빨면 남은 하나를 착용하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사이즈를 알아야 사든지 말든지 할 텐데”외삼촌은 계속 저의 젖가슴을 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저것에 사이즈 적혀있어”벽에 걸린 벗어둔 브라를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아니야 하루가 다르게 커지기 때문에 직접 보고 사이즈 체크 하는 것이 좋아”외삼촌은 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그럼 봐”어려서부터 외삼촌 앞에서 팬티 차림으로 재롱을 부렸었기에 외삼촌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거리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티를 올리고 외삼촌에게 저의 젖가슴을 처음으로 대면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야! 우리 미희 유방 멋진데. 미희야 외삼촌이 조금 만지면 안 되겠니? 대신 너희 엄마에게 비밀로 하면 너 브래지어 좋은 놈으로 두 개 사주라고 돈을 주고 갈게, 어때?”외삼촌은 저의 구미를 당기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래 만져”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젖가슴을 외삼촌 앞으로 들이밀었습니다. 


외삼촌이 저의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킥킥킥 아이 간지러워 살살 만져”아무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아니 그저 간지럽다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조금만 참아 그럼 아주 기분 좋아져, 아니다 누워”외삼촌은 저의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저를 눕혔습니다. 


전 눈만 말똥말똥 뜨고 간지러움을 참으며 천장만 쳐다봤습니다. 


“!”순간 외삼촌이 놀라운 행동을 하였습니다. 


눕자마자 외삼촌이 저의 젖꼭지를 빨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외삼촌 싫어 킥킥킥 싫단 말이야 킥킥킥”전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외삼촌의 머리를 밀며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입을 때기는커녕 오히려 젖꼭지를 질겅질겅 씹으며 빨았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외삼촌의 다른 손 하나는 저의 은밀한 부분을 비록 팬티 위로지만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간지러운 느낌은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짜릿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습니다. 


“!”외삼촌의 다음 행동은 저를 더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저의 킥킥거림이 사라지고 조용해지자 외삼촌의 팬티 위 손이 팬티 안으로 들어와 털이 몇 올 올라오기 시작한 보지 둔덕을 감싸고 있었고 그 순간 뭔지 모르는 것이 울컥하고 나오는 느낌이 들어 얼굴만 붉히고 외면을 해야 하였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여 싫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게 외삼촌과 저 사이에는 은밀한 비밀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서는 외삼촌이 우리 집으로 오는 시간은 한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외삼촌이 오면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외삼촌에게 맡겼고 외삼촌은 제 보지둔덕을 주무르기도 하였고 젖가슴을 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는 외삼촌이 제 보지를 빨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처음에는 부끄러워 미치게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느라고 애를 먹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발전이 되어서 저도 외삼촌의 좆을 빨고 흔들기에 이르렀으며 얼마 안 가서는 당당하게 외삼촌의 분신인 좆 물을 먹기에 이르렀습니다. 


제 보지에서 나온 물을 외삼촌이 먹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거의 일 년 이상을 그런 짓을 하며 지냈지만 외삼촌을 좆으로 제 보지 둔덕을 문지르며 용두질을 쳤고 생리 날짜에 맞추어 보지 둔덕이나 보지 구멍 입구에 좆을 대고 가볍게 누르면서 좆 물을 쌌지만 이상하게 좆을 제 보지에 박는 일은 없었습니다. 




“야 네가 인간이냐? 날 이렇게 만든 것도 부족하여 미희까지 나처럼 만들 셈이냐? 이 개새끼야!”일 년이 훨씬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외삼촌은 평소처럼 토요일 5시경에 우리 집으로 왔고 그리고 평소처럼 저는 외삼촌의 좆을 빨았고 외삼촌을 저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보지를 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엄마가 다니던 공장에서 수출 물량을 선적시키고는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퇴근을 시킨 것이 5시였고 엄마가 집에 도착을 한 것은 20분 후였는데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빗자루를 잡고는 오빠인 외삼촌을 사정없이 때리며 울부짖었습니다. 


“미안해 정말이야 이 이상도 이하도 안 했어”외삼촌이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여동생인 엄마에게 사정을 하였지만 


“개새끼야 넌 인간도 아니야 얘가 누구니 이 개새끼야 당장 나가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면 바로 그날이 네 놈 제삿날이란 것을 알아. 어서 나가 퍽퍽퍽”엄마는 바지를 치켜 입으며 몸을 피하는 외삼촌에게 사정없이 빗자루로 때렸고 그리고 겨우 옷을 추슬러 입은 외삼촌은 걸음아 나 살려 라는 듯이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너 누어 봐 어서 이년아 어서”외삼촌이 사라지자 엄마는 저를 향하여 빗자루로 때릴 기세를 하며 명령을 하였습니다. 


“으......응”전 잔뜩 겁을 먹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누웠습니다. 


“이년아 가랑이 벌려 어서”엄마는 노기 탱천해 있었습니다. 


“응”잔뜩 겁을 먹은 저는 가랑이를 최대한으로 벌렸습니다. 


“더러운 놈 그래도 양심이 있었던지 천륜은 지키려고 넣진 않았군. 이년아 앞으로 길에서라도 외삼촌을 만나면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엄마에게 바로 말해 알았지? 옷 입고 휴~~~~~”그게 끝이었습니다. 


그 후로 외갓집 제사가 있어 가더라도 외삼촌은 엄마와 저에게 시선을 주지 아니하였고 엄마역시 그랬으며 저 역시 그렇게 할 수밖엔 도리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먹고 철이 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본 결과 <넌 인간도 아니야 얘가 누구니?>란 엄마가 한 말과<양심이 있었던지 천륜은 지키려고 넣진 않았군.>란 짧은 두 말의 안에 함축이 된 뜻이 무엇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엄마가 내색을 안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저도 입을 열고 말하지 아니하고 있답니다. 


또 <넌 인간도 아니야 얘가 누구니?>란 엄마가 한 말과<양심이 있었던지 천륜은 지키려고 넣진 않았군.>란 짧은 두 말이 왜 외삼촌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좆을 제 보지에 삽입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인데 삽입은 안하고 빨고 비비며 보지 구멍 입구에 좆을 대고 좆 물만 싸는 짓을 했는지는 제가 중학교에 졸업을 하고 엄마 곁에서 독립을 하여 더 큰 도회지로 나와 공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저의 이 사연을 들은 여러분들도 저의 엄마와 외삼촌 그리고 제 사이를 대충은 짐작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그에 대한 언급은 피하기로 하겠습니다. 


더 언급을 한다면 진실을 밝히고 싶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 마음에 받을 상처가 너무 커 보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바로 남편의 여동생 남편이자 우리 딸 미희의 고모부인 제부에게서 외삼촌에게서 처음으로 느꼈던 짜릿한 느낌은 한 번의 짧은 키스 안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참 고모부와 저 사이의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지금은 완전히 법적으로 남남이 된 사이이지만 그래도 한 때는 부부의 연으로 살을 마주대고 살았던 남편과의 이야기를 잠시 언급하지 않으면 이해가 곤란해지겠기에 언급을 하려고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엄마 혼자 벌어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는 것은 욕심이요 바램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중학교를 졸업을 하자마자 먼저 우리가 살던 도회지보다 훨씬 큰 도회지에 먼저 나가있던 선배 언니의 도움으로 저 역시 큰 도회지로 나와 공장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가 사는 도회지에 인접한 큰 도회지가 한 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였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말 그대로 코 베어가는 그런 곳이란 것을 일찍 알았습니다. 


이유는 신발 갑피를 만드는 공장생활을 하면서 제가 베우기 시작을 한 것은 재봉틀이었습니다. 


옛날 TV나 극장의 대한 뉴스 등을 통하여서도 접하였을 것이고 요즘은 개성 공단 뉴스가 나오면 간혹 보이는 장면이지만 갑피 만드는 공장의 경우도 일반 옷을 만드는 공장의 현장과 다르지 아니하게 수 백 대의 재봉틀이 마치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나란히 라도 하듯이 좌우 앞뒤로 줄지어 있고 그 앞에는 한 대당 한 명의 여자가 재봉틀 앞에 앉아서 열심히 재봉을 하는 것을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재봉틀은 직접 만지고 재봉을 하는 것은 재봉틀 앞에 앉은 여자일지모르지만 그 재봉틀을 직접적으로 간리하는 것은 소위 아부라사시라는 재봉틀이 고장이 나거나 고장이 나지 않게 사전에 철저하게 유지 보수하는 남자들의 눈치를 살피지 아니하면 나쁜 재봉틀을 주기도 하지만 고장이 나더라도 차일피일 미루기 때문에 반장이나 직장에게 야단을 맡게 마련이기에 우리 여공들은 아부라사시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습니다. 


다행이 제가 상대하던 아부라사시 아저씨는 마음이 비단같이 고운 분이라 그러지 아니하였으나 제 친구가 속한 반의 아부라사시는 여자를 워낙 밝혀서 그 친구가 속한 반의 여자치고 그 아부라사시에게 몸을 더럽히지 아니한 여자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담당하였던 아부라사시 아저씨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요즘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기술자 하나가 이직을 하게 되면 그 밑에 있는 여공들까지 단체로 우르르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도 저게 믿고 의지한 아부라사시 아저씨의 경우에나 밀물처럼 우르르 몰려가지만 여자를 밝히는 남자가 이직을 하면 그 남자를 믿는 몇 몇의 여자들만 자리를 함께하였기에 공장에서 선호를 받지 못 하였습니다. 




전 지금은 이혼을 한 남편을 만나게 된 날까지 그 아저씨 밑에서 일을 하였기에 정조를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대신 그 아저씨를 따라다니면서 는 것이 있다면 술이었습니다. 


두주불사인 그 아저씨 덕에 남편과 만났을 때는 저도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는 그런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혜성과 같이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 남자가 바로 이혼을 한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항상 뒷바퀴가 앞바퀴보다 훨씬 커서 마치 엎드려 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오토바이를 타고 항상 제가 다니던 공장 앞을 지나갔습니다. 


키 1m 60을 겨우 넘는 저에게 1m70은 훨씬 넘어 보이고 덩치에 맞게 보이는 오토바이를 굉음을 나게 하며 달리는 모습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퇴근시간에 맞추어 그 오토바이가 지나가지 아니하면 숙소로 가지도 못 하고 공장 정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이 아가씨 한 번 타고 싶어?”수 없이 많은 날을 지켜만 보던 저에게 그이가 오토바이를 제 앞에 세우고 물었습니다. 


“정말요?”놀랐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생기기를 간절하게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런 바람이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허리 꼭 잡고 등에 몸을 바로 기대고 그렇지”앞에서도 말을 하였지만 중학교 다니면서 이미 C컵 수준의 젖가슴이 그이의 가슴에 닿아 옆으로 삐져나올 정도였지만 부끄럽거나 쑥스러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걸 기화로 저는 매일 그이의 오토바이를 타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달포가 지나도 그이는 그 이상을 원하지도 아니하였기에 믿음은 더 갔습니다. 




“미희야 나 말이지 널 갖고 싶은데 어쩌지?”그 날도 그이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저를 태우고 아주 한적한 산길로 들어서더니 가기를 멈추고 뒤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였습니다. 


그이가 이끄는 대로 오토바이에서 내려서는 제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내리게 하더니 포옹을 하였고 그리고 키스를 하였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하복부에서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고 그 통증은 외삼촌도 건들지 못 하였던 저의 순결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순결을 앗아간 그이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부모가 없는 놈이고 형제라고는 이미 시집을 간 여동생 하나가 전부이며 그도 제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이었고 돈도 벌어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아침이면 조간신문을 받아서 길거리에서 팔고는 조금 팔리는 날이면 여인숙에서 잠을 자지만 그렇지 못 한 날에는 역이나 다리 밑 아니면 지하도에서 잠을 잔다고 하였습니다. 


요즘의 노숙자하고는 조금 다르죠. 


요즘 노숙자는 술이나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지만 당시에 그런 노숙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돈을 벌려고 노력은 하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순결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어온 저로서는 그이를 의지 할 수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공장생활에 정이 들었던 그 도회지 작별을 하고 그이의 여동생이 산다는 도회지로 와야 하였습니다. 


빈털터리에 여자 하나를 달랑 꿰차고 들어온 오빠를 곱게 맞을 여동생은 아마 지구상에서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이의 여동생은 저를 반듯하게 올케언니라고 부르며 오빠를 부탁하였습니다. 


나이는 그이에 비하여 적었지만 결혼을 일찍 하여 세상의 맛을 안 탓인지 그들도 단칸방에서 두 애들을 키우며 사는 처지이지만 우리에게 다락방을 선뜻 내어주었습니다. 




다만 그이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고모부에게는 저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전 당시에 고모부에게는 이웃에 사는 처녀로서 그이 여동생과 친한 그런 사이로만 알았습니다.(물론 처음에만) 




전 돈이 없어서 마시지 못 하고 참아야 하였지만 당시에 직장생활을 하던 고모부는 퇴근을 하면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즐겼습니다. 


반주가 보통 소주 한 병 많으면 두 병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기 바쁘게 잠자리에 들었고 그러면 저는 몰래 담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서 다락에 올라갔고 누워서 그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명색이 형님이면서 여동생의 다락방에서 잠을 자려니 미안하여 제부가 잠이 들 즈음에야 여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다락으로 기어 올라와 데 옆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가 저란 여자가 이웃 처녀가 아닌 마누라 오빠의 여자란 것을 안 고모부는 여자를 챙기지도 못 하면서 건들어서 신세를 망치게 했다며 그이와 대판 싸움이 붙었고 그 싸움의 후유증으로 우리는 다시 길거리를 헤매는 떠돌이 인생으로 전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놀았기에 그랬지만 그이 주머니 역시 땡전 한 푼 없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하려면 단 몇 푼의 밑천이라도 있어야 할 것인데 한 푼도 없다 보니 정말 답답하였습니다. 


그이가 역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디론가 로 갔습니다. 


돌아온 그이 손에는 몇 푼의 지폐가 손에 쥐어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이는 자기 여동생의 남편이 즐겨가는 낚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낚싯대와 릴 몇 개를 도둑질하여서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에게 팔아서 생긴 것이란 것은 몇 칠 후 그이의 여동생을 역 앞에서 만나서야 알았습니다. 


하여간 그이는 그 돈을 밑천으로 신문을 사서는 역전이며 인파가 많은 길에서 팔았습니다. 


물론 저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한 덕에 단칸 셋방이지만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자 저는 길거리를 배회하며 신문을 파느니 저의 특기를 살려서 재봉틀을 밟는 것이 소득이 되겠다고 판단을 하고는 일자리를 구하였고 가진 기술 덕에 일자리는 손쉽게 구하였습니다. 


그이는 신문을 팔고 저는 재봉틀을 밟으며 사는 사이에 돈도 조금은 저축을 하였고 그리고 우리들 사랑의 결실인 정아를 낳았습니다만 아직 저는 면사포를 쓰지 못 한 그런 처지였습니다. 




제 신세를 망친다며 허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이의 여동생 주선으로 저는 면사포를 썼습니다. 


그리고 싫으나 좋으나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나 그이는 밖으로만 나돌지 집안일에는 신경을 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신발 산업의 붕괴로 저의 일자리는 사라졌고 제가 왔을 때 직장생활을 하던 고모부는 어엿한 사업체의 사장님이 되어 있었고 그 덕에 저는 고모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요일 12시 정각에 약속장소에 이미 고모부는 기다리며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고모부 오래 기다렸어요?”환하게 웃으며 다가가 물었습니다. 


“아니요, 일찍 오셨네, 어디로 가죠?”고모부가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습니다. 


“술 어때요?”엄지와 검지를 말아 입에 대고 환하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겨우 12신데?”고모부가 놀라며 물었습니다. 


“술이 취해야......”저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래요 가서 낮술 한 번 합시다, 하하하”고모부가 호탕하게 말하며 저의 손을 잡았습니다. 


고모부 아니 손아래 시누 남편이자 손위의 처남 마누라 사이에서 연인으로 변하는 전초전의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나가요”둘은 간단한 안주를 시켰고 그리고 잠시 후 소주 두병을 비우고 알딸딸해진 저게 고모부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고모부도 계산을 하고 나와 걸으면서도 말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땅바닥만 보고 걸을 뿐 말을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모부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허름한 여관 간판이 달린 이층 건물로 올라가고 있었고 저는 마치 지남철을 따라가는 쇠 조각처럼 고모부 뒤를 따라 좁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고모부가 계산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불결하기가 짝이 없었고 여관이면 당연히 있게 마련인 욕실도 없는 거의 여인숙에 가까운 여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바닥에 깔린 이불은 말이 이불이지 거의 몇 말 몇 칠을 몇 사람들이 뒹굴고 갔다는 것을 상상하게끔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다만 여관이지 여인숙이 아니라고 할 만한 것이라고는 에어컨에 둘이 앉으면 꽉 찰 소파에 작은 냉장고가 고작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방안에서 취사를 하였던지 음식 찌꺼기가 벽에 더덕더덕 붙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두 뒤의 그 여관들은 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던 뱃사람들이 하루 혹은 이틀 여정으로 입국을 하거나 외항선 선원 역시 하루 이틀 머물 경우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그 도시에 아는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닐 경우 사전에 타 지역에 살고 있던 마누라나 애인에게 연락을 하여 그런 여관을 잡아두고 기다리게 하였다가 배가 도착을 하여 수리를 하거나 하역 내지는 선적을 하는 동안에 거기에서 유하며 마누라나 애인에게 몸을 푸는 그런 여관이었습니다. 


또 그 여관 같은 곳에서는 프론트에 말만하면 창녀도 얼마든지 불러다 주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불려 다니는 창녀들의 수준은 요즘 여관이나 모텔 계단에 즐비하게 널린 명함의 여자들과는 격이 달랐다고 하였습니다. 


여관이나 모텔 계단에 뿌려진 명함 속의 여자들이 룸살롱의 접대부라면 그런 여관을 전전하는 여자들은 말 그대로 최하위의 창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벗지?”고모부가 상의를 벗으려 하며 말하였습니다. 


“싫어욧! 이런 불결한 곳에서 고모부의 여자가 되긴 죽어도 싫어요.”강하게 저의 의지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럼 나가서 다른 여관으로 가지”고모부가 상의를 다시 끼어 입으며 말하였습니다. 


“싫어요. 돈이 아깝잖아요?”전 나가자는 말에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럼 어쩌자고”고모부가 당황해 하며 물었습니다. 


“돈 아까우니 여기 앉아 이야기나 해요, 잠시만 기다려요”하며 전 타월을 가지고 박으로 나가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저는 공용 샤워장으로 가서 두 개의 타월을 물로 수차례 씻고 행구기를 반복한 끝에 그 타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누가 어떤 상태로 앉아 무슨 짓을 하였을지 모를 소파를 역시 수차례 닦고 문지른 끝에 먼저 앉았습니다. 


“그렇게 불결해 보여?”고모부가 제 옆에 나란히 앉더니 저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습니다. 


“저것 봐요 저 누런 말라비틀어진 것이 뭐겠어요?”이불에 누렇게 묻은 것을 발로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하긴 그러네. 이러고도 장사가 되는 모양이지”고모부가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순간 벽 사이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의 떡 치는 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부둥켜안았고 그리고 서로를 탐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모부이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제 치마 안으로도 들어왔고 제 젖가슴 안으로도 들어왔습니다. 


저 역시 고모부의 바지 안으로 손을 넣고 난생 처음으로 외삼촌과 남편 아닌 다른 남자의 좆을 주물럭거리며 만졌고 나중에는 흥분을 참지 못 하고 정말이지 외삼촌 이후 남편의 좆도 빨기를 거부하던 저는 최초로 외간남자인 고모부의 좆을 빨고 흔들었습니다. 


다만 소파가 길지 아니한 까닭 때문에 눕지를 못 하였기에 제 보지를 고모부가 빨아주지는 못 하고 그저 손가락으로 쑤셔주기만 하였습니다. 




“다음 주는 어때?”고모부의 좆이 제 보지에 박혀서 준 쾌락은 아니지만 외삼촌 이후 최고의 오르가즘을 느낀 여운을 생각하며 옷을 여미는 저에게 고모부가 물었습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로서 우리들은 합치지 못한 아쉬움을 다음으로 미루는 약조까지 한 것입니다. 




“타!”그 다음 일요일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갔더니 이번에는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더니 처음 남편이란 작자를 만나면서 오토바이에 매료되어 타라는 말이 거부감이 없이 탔던 것처럼 고모부의 말은 감미롭기까지 하였습니다. 


“멀리 가요?”차에 올라 차가 출발하자 물었습니다. 


“멀리 가고 싶어?”고모부가 제 허벅지 위에 손을 얹으며 물었습니다. 


“응 아주 멀리”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였습니다. 


“형님이 드라이브 안 시켜 줘요”치마 안으로 손을 넣으며 물었습니다. 


“흥 드라이브요? 집에 착실하게 들어오기나 해도 좋겠어요. 어떤 년이 생겼는지 곁에 온지는 이 년이 넘었고, 아~흑”남편을 욕하면서도 고모부의 손길에는 그만 바로 오르가즘의 비탈길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는지 고모부는 말이 없이 주무르기만 하였습니다. 


“고모부 도저히 못 참겠어요, 가까운 곳에 들렸다 가요”전 고모부의 억센 손등을 잡으며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요”하고 말하더니 길가에 있던 모텔 주차장 안으로 차를 몰았고 파킹을 시켰습니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고모부가 끌어안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고모부 씻고”한참의 키스 끝에 말을 하였습니다. 


“아니 처남댁 체취를 그대로 느끼고 싶어”라고 말하며 저의 옷을 마구 벗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도 그래요”저 역시 고모부의 옷을 정신없이 벗기고 있었습니다. 


“겉과 달리 멋진데”옷을 벗기고 난 고모부가 저의 알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놀렸습니다.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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