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사랑 - 10부 2장_by 야설

7년간의 사랑 - 10부 2장_by 야설

잠자리 0 389

10부 2장




신교대 입소 후 연일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되었다. 특히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해 여름은 30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훈련과정 보다는 더위와의 싸움 이였다. 다행인지 몰라도 더위를 덜 타는 나는 훈련 받는데 남들보다는 수월했다. 또한 이곳에서 나의 특기가 발휘되어 조교들에게 참 많이 불려 다녀 가끔 훈련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훈련소 들어오기 전 그녀의 한마디는 내가 훈련의 고달 품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몸은 조교들의 고함소리에 움직이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그녀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병원을 갔을까? 혼자 무서워서 어떻게 갔을 까? 




아마도 란은 아이를 나려고 할 것이다. 미혼모라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당당하게 출산해서 충분히 애를 키울 그녀다.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그녀다. 그나마 내 말이라면 들어주는 그녀지만 내가 이곳에 들어와 있으니 말릴 사람이 없다. 




언제 일까? 그녀와 나의 사랑의 결실이 생긴 것이 어제일까? 임신 테스트까지 했다면 최소한 2개월은 된 것인데.......그럼 첫날밤이란 말인가. 정말 재주도 좋아. 한방에 홈런이야. 


아니지 그게 중요하게 아니지. 난 어찌해야 될까? 지금 이 나이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결론은 아마 그녀는 아이를 날 생각이란 것이다. 그녀가 내가 입소 전에 그것도 10분도 남지 않는 시간에 이야기한 것은 이미 자신이 결정하고 나에게 말릴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난 그때 담배라는 녀석을 배웠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또한 다들 담배 피우며 쉬고 있는데 담배피지 않는 사람은 남들 물 당번을 해야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주는 담배를 피우고 말았다. 




훈련소에서 많은 동기들과 조교들의 손금과 사주를 봤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내 점성술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사람이 살아온 과거는 80%이상 정확도를 가지고 있고, 미래는 아직 살아보지 못해서 모른다. 내가 제대할 때쯤 내가 손금을 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래는 50%이상의 정확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난 내 손금을 보았다. 자신이 자신을 점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심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확하고 냉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손금에 대한 몇 가지 지식을 알려주고 넘어가자. 


손금을 연구하고 학문적 영역으로 구축한 두개의 축이 있다. 


동양손금과 서양손금인데 동양손금은 손의 형태와 전체적인 손금의 모양을 보고 서양 손금은 손에 나타난 세세한 금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본다. 내가 배운 것은 서양손금이다. 




* 손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다? 


아니다 손금은 변한다. 


* 여자는 왼손, 남자는 오른손을 본다? 


아니다 왼손은 태어난 손금으로 잘 변하지 않고 오른손은 살아가는 손금으로 변화가 심하다. 그러므로 남녀 필요 없이 두 손을 다 보아야 한다.


* 가운데 손가락 끝부분의 금이 넓으면 미인, 미남을 얻는다?


아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손금은 전 삼태선과 후 삼태선을 기본으로 본다. 전 삼태선은 생명금, 두뇌금, 감정금이고 후 삼태선은 직업금, 사업금, 성공금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은 손금이 가로로 가는 것은 전후삼태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액운금이고 세로로 올라가는 선은 모두 좋은 금이다. 




사주팔자, 당 사주, 자미주, 태극팔괘, 손금, 성명학, 관상까지 모두 공부해 보았다. 보통 사주팔자가 40%, 환경적 요인이 60%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100%가 또한가지 있다. 그건 바로 살아가면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 100%다. 다시 말한 면 그 순간, 순간의 선택과 마음가짐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내 손금에서 결혼금과 자녀금을 보았다. 손금에 나타난 결혼의 시기는 30세 전후, 그리고 자녀금에 나타난 금은 딸3 아들1 옜다. 그리고 애정금을 보니 20~25세까지 불규칙하고 어지러운 것이 여인과 많은 다툼이 있을 금이고 이별금을 보니 미세하게 이별할 금이 보였다. 




내 손금은 아직 내가 결혼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두 개의 결혼금 중 진한 것을 결혼금으로 판별하는데 진한 것이 30세 전후다. 하지만 그 밑에 25세 전후로 결혼금이 하나 더 있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애를 난다면 결혼하기로 말이다. 그럼 25세 전후의 금이 결혼금이 맞지 않을까?




신교대 교육은 4주간의 훈련으로 끝났다.(현역은 6주를 받지만 당시 방위는 4주 훈련만 받았다.) 마지막 주에 자대 배체가 있었다. 방위는 당시 바둑알 뽑기로 자대를 배치 받았다. 


이 곳에서 교육을 받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적은 바둑알을 한통에 집어넣고 섞은 다음 훈련병 하나하나가 자신이 갈 자대를 뽑는 식이다. 한마디로 운을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운 좋으면 육군대학도서관 같은 땡보직으로 운 나쁘면 하루 종일 삽질만 한다는 신성사단으로 간다. 




여기서 사족 한마디만 더 하고 간다. 이 말을 끝으로 사족 붙이지 안겠다.


“군대안간 남자들에게, 훈련소 들어가면 신병카드를 작성하는데 특기 쓰는 란이 있다. 이곳에 아무것도 쓰지 마라. 그냥 백지로 제출해라. 군대는 정말 자기운 이다. 군대는 그때 그대 필요한 인원이 있다. 군대에서 알아서 자기가 갈 자대를 알아서 배치해 준다. 절대 잘났다고 특기 란에 이것저것 쓰지 마라.”




3천명이 넘는 훈련병들이 하나하나 나가 바둑알을 뽑는 것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나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조교 한명이 갑자기 연단에 올라갔다.


“○○○훈련병, ○○○훈련병.......○○○훈련병은 밖으로 나와”


그 명단에 나도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이가 싶어 밖으로 나가 보니 호명된 훈련병들이 모여 있었다. 


“○○○훈련병, ○○○훈련병.........○○○훈련병 한쪽으로 열외”




그 명단에도 내가 있었다. 다시 호명된 훈련병은 나를 포함하여 6명이 엇다. 6명이 한쪽으로 가서 모이자 평소에 근엄하고 무서운 조교의 표정이 약간 이상하다.


“너희들 빽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린가. 빽이라니. 내가 군대에 빽이 있나. 군대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먼 친척이 한명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안과 연락도 하지 않는 집안사람이 날 위해 빽을 쓸리 만무했다. 


“너희들 사단이야.”


사단이라니. 무슨 얼어 죽을 사단이란 말인가? 


“너희들은 착 출 이야. 넌 감찰부, 넌 부관부, 넌 인사처, 넌 정보처, 넌 동원처 그리고 넌 작전처야.”


내가 작전처 엇다. 작전처의 정식명칭은 사단사령부 작전참모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놈은 공인회계사, 한 놈은 외무교시 합격하고 외무부에 있다온 놈, 한 놈은 사법교시 1차 합격하고 들어온 놈, 한 놈은 연극극단 감독 겸 연출하다 온 놈. 그리고 한 놈은 지 아버지가 원스타였다. 다들 사회에서 한 가닥 하는 놈들이거나 정말 빽줄이 있는 놈이다. 근데 난 왜 착출이야. 이것도 나중에 알았다. 앞서 이야기한 특기 란을 빽빽하게 기제 했기 때문이다. 상고를 나온 내가 자격증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자동차정비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 특기를 모두 기재하니 바로 착 출 이었다. 




훈련의 마지막은 분열 이였다. 훈련소에서 가장 힘든 훈련을 선택하라면 유격과 분열이다. 행군이 힘들다는 사람도 있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유격과 분열이다.


분열을 쉽게 설명하면 국군의 날 행진하는 군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 행진이 분열이다. 


걸어가는 게 머가 힘드냐고, 한번 해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다. 


오와 열을 맞추고 앞뒤 간격을 맞추어 똑같이 행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수반된다. 각자 키가 다르고 보폭이 틀린데다 손을 들어올리는 각도까지 같아야 한다. 




하여튼 퇴소하던 날 가족 친지를 모시고 연병장에서 분열을 끝으로 훈련이 끝난다. 분열을 마치고 퇴소신고를 마치면 일단 집에 가는 것이다. 


퇴소신고가 끝나자 가족들이 한번에 우르르 연병장으로 몰려나온다. 


여기저기에서 “아이고 내 아들”, “엄마”, “자기야” 등등의 말들이 들려온다. 




난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나 아버지 등 가족들이야 모두 직장에 나가니 이 시간에 올 수 없었다. 더구나 방위 훈련 끝났다고 대견하다고 오실 부모님도 아니다. 대가족이 좋은 점도 많지만 안 좋은 점은 부모님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한명의 자식만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요즘 한 가정 한두 명의 자식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안 된다. 그리고 9월이니 그녀도 개강을 해서 학교에 갔을 것이다. 중간에 한번 편지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학교 빼먹고 퇴소 식에 오지 말라고 했다. 일부러 임신에 대한 것은 쓰지 않았다. “왜” 그런 중요한 소식은 편지지가 아닌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총이나 반납하고 집에 가려고 내무반 발걸음을 돌렸다. 


“수혼아.”


어디선가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돌아보니 어머니가 오셨다. 기대하지 않던 어머니의 등장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다른 모자간이라면 안아보고 만져보고 할 것이지만 우리 모자간은 아니다. 어머니께 인사를 하니 어머니는 대견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것이 우리 어머니가 아들에게 표현하는 애정표현의 한계다.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있는데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였다. 어머니와 함께 온 것이다. 어머니가 옆에 계시지 않았다면 끌어안고 키스라도 하겠지만 어머니가 지켜보고 계시니 그럴 수도 없고 우린 간단한 인사만하고 말았다. 




“학교는.......”


“애인이 퇴소하는데 와야지?”


“그럼 땡땡이 친 거야.”


“자기야 제발 고리타분하게 그리지 마라. 응~”


“이것들이 부모님이 힘들게 돈벌어서 대학 보내주니 땡땡이나 치고 말이야. 그런 것들은 한번 자신이 뼈 빠지게 벌어서 등록금 내 봐야지. 그래야 하루 빠지면 도대체 얼마가 날아가는지 알지. 너 등록금하고 학교 시간별로 계산해 봤어. 도대체 한 시간이면 얼마의 돈을 지불하는지 말이야.”


“지금 그런 말! 해야 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이제~ 그만~. 나 보고 싶었지.”


“당연하지.......보고 싶었어.”




일단 란에게 담배 한 세트를 사달라고 했다. 어머니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아들이 어머니에게 담배 사 달라고 하기 머 해서 말이다. 란이 물어보지도 않고 담배를 사다 주었다. 일단 어머니와 그녀를 한쪽에 기다리게 한 다음 내부반에 들어가서 한 달 동안 정든 총과 물품들을 반납하고 우리 내부반 조교에게 담배를 선물하고 나왔다. 




어머니는 버스에 올라 뒤쪽에 앉았다. 우린 어머니와 조금 떨어진 버스 중간에 있었다. 


“제일 먹고 싶은 게 머야.”


“왜 또 사주려고”


“자기가 맡긴 돈 아직도 많아.”


내가 신교대 들어가기 전에 누나들과 매형들에게 받은 돈,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그녀에게 맞기고 신교대에 들어갔다. 신교대 들어가면 돈이 필요 없을 것 같고 또 많이 가지고 들어가면 보관할 곳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교대 들어가면 돈을 모두 압수해서 통장을 만들어 준다. 


하여튼 그녀가 필요한 곳에 쓰라고 준 돈이다. 




“맥주 한잔”


신교대에서 내가 가장 먹고 싶었던 건 신원한 맥주 한잔 이였다. 신교대에서 술을 줄 리 만무하고 땡볕에 훈련을 받고 있노라면 맥주한잔이 간절했다. 그녀는 가방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사왔어.”


“응 들어오기 전에 사왔어. 자기가 가장 먹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대단해 어떻게 알고”


“자기하고 만나지 벌써 4년이 넘어 이젠 눈빛만 봐도 자기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하긴. 고마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캔 맥주를 먹었다. 정말 그때의 캔 맥주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더 먹고 싶어도 참아. 이때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먹자”




오랜만에 집에 오니 모든 것이 반갑다. 내 방도, 내 책상도 어느 것 하나 반갑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번쯤 집을 떠나 봐야 집의 소중함을 느낀다. 


집에 오니 아버님은 아직 퇴근전이고 해서 옷 갈아입고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그녀와 함께 나왔다. 아직까지 정말 내가 궁금해 하는 문제는 그녀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호프집에 도착해 내가 담배를 물자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날 보았다.


“자기 담배 피는 거야.”


“응 신교대 있을 때, 배웠지.”


“피지 마”


“한 대만 피우고 그만 둘 깨”


“하여튼 몸에 좋지도 않은 거, 피지 마. 자기 몸도 약한데”


“알았어.”


“.........”


술이 나오자 단숨에 오백 잔을 원샷을 했다. 칼칼한 목에 신원해진 느낌이다. 




“어떻게 됐어.”


“응.......머가”


“그거 말이야.........임신”


그녀는 조용히 가방에서 노트한권을 꺼냈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새것으로 제목도 없는 노트였다. 


“자기 없는 한 달 동안 쓴 편지야. 이곳에 다 있어. 하지만 지금 읽지 마. 집에 가서 읽어”“지금 보면 안돼.”


“안~돼~........그리고 자기도 군대에서 쓴 노트 나죠.” 


“엉.......무슨 소리야.”


“선배들에게 들어서 다 알고 있어. 군대가면 일기 쓰리고 노트 한권씩 준다며, 자기도 일기나 편지나 기록했지. 자기도 일기도 많이 쓰고, 편지도 많이 쓰는 사람이니까 그냥 백지로 가지고 나올 리는 없지.”


“허........허허허. 그건~ 안돼. 그 노트 말고 다른 거 줄께. 꼭~ 약속이야.”


“왜~~~예. 노트죠~”


“안돼. 다른 걸로 준다니까?”


“아~~잉. 알았어. 자기도 꼭 집에 가서 읽어야 돼.”


“알았어.”


그녀에게 정말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그녀가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참았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와서 그녀가 준 노트를 보았다. 내가 없었던 나날들의 기록이 빼곡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일기 형식으로 그날의 기록과 내가 자신과 떨어져 있는 심경 등이 기술되어 있는데 내가 정말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 펼쳐 보니 임신에 대한 기록이 몇 장에 걸쳐 기술되어 있었다. 




그녀는 혼자 병원가기 무서워 많이 망설이다 끝내는 용기를 내서 친구와 함께 산부인과를 방문했고, 산부인과의사의 진단결과는 임신 이였다. 부품 마음에 기쁨도 잠깐 의사는 그녀에게 낙태를 하라고 권유했다. 그녀가 미혼모이기 때문이 아니다. 태아가 자궁 외 임신으로 그대로 두면 태아뿐만 아니라 산모까지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 이였다. 많은 고민을 한 그녀는 산부인과를 찾아가 낙태수술을 한 것이 주요 내용 이였다. 




그녀는 낙태한 다음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기 힘들어 이런 형식으로 전해준 것이다.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혼자서 고민하고 슬퍼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밝은 웃음만 보여준 그녀를 생각하자 슬픔이 몰려왔다. 




그날 이후 그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서 낙서 비슷하게 한 노트는 별별스런 내용이 다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줄 수 없었다. 그동안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그녀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달래주는 편지를 작성했다. 장장 A4용지 40여장의 장문으로 그녀에게 편지가 아닌 리포트를 작성했다. 




“여기 약속한 편지야.”


“이거 서류 봉투 아니야.”


“너무 많아서 편지봉투에 들어가지 않아서”


“이거 내가 리포트 작성한 것보다 많다. 얼마나 걸린 거야.”


“얼마 걸리지 않았어. 너도 지금 읽지 말고 집에 가서 읽어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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